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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과 수행

산너머 안골에는 누가 살길래— 은명교회 30주년 기념 예배에서 만난김진희 목사님의 관상적 영성

by 숲향기 2026.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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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중이신 김진희목사님

 

영성과 수행

산너머 안골에는 누가 살길래
— 은명교회 30주년 기념 예배에서 만난
김진희 목사님의 관상적 영성

충남 예산 안골교회 | 창동 은명교회 창립 30주년 기념 예배

"나의 꿈은 사랑 그 자체가 되는 것"

누군가 꿈을 물었을 때 3초 안에 대답할 수 있는 나만의 고백이 있으신가요? 제가 섬기는 창동 은명교회 창립 30주년 기념 예배에서 큰 감동을 전해주신 충남 예산 안골교회 김진희 목사님의 꿈은 바로 '사랑 그 자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에세이 《산너머 안골에는 누가 살길래》의 저자이기도 한 김진희 목사님께서 안골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은명교회 강단에 서셨습니다. 책으로 먼저 만났던 처절하고도 숭고한 영성의 텍스트가 눈앞에서 생생한 삶의 간증으로 울려 퍼졌던 그 복된 소회를 블로그에 담아봅니다.

1. 예당저수지 윤슬을 바라보며 버텨낸 25년의 세월

이 책과 예배가 저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작가님의 삶의 터전인 충남 예산 신양면 안골마을과 '예당저수지' 때문입니다. 제 고향이 예산 근처라 그런지, 목사님이 전해주시는 시골 풍경이 남일 같지 않고 어릴 적 고향의 품처럼 따뜻하게 와닿았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도시 사람'이었던 목사님이 안골 골짜기에서 보낸 세월은 어느덧 25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온통 나무와 새소리뿐인 그곳에서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마주하며 사역을 이어오셨습니다. 투병 중인 남편 목사님을 위해 24시간 암막 커튼을 치고 생활해야 했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커튼 틈새로 비치는 예당저수지 상류의 찬란한 '윤슬(햇살에 부서지는 물결)'을 바라보며 하루를 버틸 위로를 얻으셨다는 고백은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2.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앓고 있는 시대, '숨겨진 아픔'을 마주하다

김진희 목사님은 "21세기 교회의 사명은 치유"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고백이 유독 제 가슴에 무겁고도 깊게 가라앉았던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민낯을 그대로 꿰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SNS나 쇼츠를 보면 다들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반은 아픈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병든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아픈 사람들은 다 숨어 있고, 세상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물질적 풍요와 IT 기술의 정점을 구가하는 화려한 세상이 되었지만, 그 화려한 네온사인 뒤편에는 고독과 마음의 병으로 신음하며 스스로를 숨긴 이들이 가득합니다. 목사님 역시 2000년대 초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척박했던 안골 골짜기에서 가난과 문맹으로 소외된 어르신들을 돌보며, 그리고 남편의 오랜 병상 곁을 지키며 이 '숨겨진 아픔'들을 온몸으로 마주해 오셨습니다. 세상이 보지 못하는 가장 낮고 외딴섬 같은 안골 골짜기라는 '컨텍스트(맥락)' 속에서 흘린 눈물이 있었기에, 그녀가 전하는 치유의 메시지는 그 어떤 화려한 설교보다 강력한 생명력을 얻습니다.

3. "당신이 알던 김진희는 죽었습니다" – 7년의 간병과 긍휼의 영성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방년 23세, 신학대학 4학년이라는 젊은 나이에 12살 연상의 중증 지체장애를 가진 남편(고 서영수 목사님)과의 결혼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지난 7년 동안은 거구의 남편을 홀로 목욕시키고 대소변을 받아내며 생사의 갈림길을 매일 밤 넘나들어야 했던 모진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저녁 "오늘을 못 넘길 것 같다,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편 곁에서 의리와 책임으로 자리를 지키던 목사님은 어느 날 밤, 인간적인 에고와 거짓 자아가 완전히 깨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아픈 사람 앞에서는 내 판단도, 내 이해도 다 내려놓고 '나'라는 존재 자체가 없어져야 비로소 그 아픔이 보인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인간 김진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이 깊은 인내가 내 힘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임을 깨달은 날, 목사님은 남편의 메신저에 스스로 이렇게 사망 선고를 내리셨다고 합니다.

"당신이 알던 김진희는 죽었습니다."

나를 완전히 비워내고 오직 그리스도로만 채워질 때 비로소 원망이 사라지고 오직 '긍휼'만 남게 됩니다. 이 긍휼이야말로 숨어 우는 아픈 이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고 고치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지난 2025년 6월, 평생의 동역자였던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이제 덤으로 얻은 '인생 2회차'를 시작하신다는 목사님의 고백 속에서 사별의 슬픔을 넘어선 진정한 '영성의 장인'을 보았습니다.

4. 은명교회 30주년, 존재 자체로 치유가 되는 공동체를 꿈꾸며

은명교회와 안골교회의 인연은 참으로 각별합니다. 30여 년 전 정동교회 시절, 신학생으로 방황하던 두 분 목사님 부부에게 새로운 영적 기후를 열어주시고 결혼 주례까지 서주셨던 분이 바로 은명교회 이민재 목사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작년 남편 목사님의 장례 예배 집례에 이어, 올해 은명교회 30주년 기념 예배의 설교단에서 다시 만난 두 교회의 연대는 마치 한 피를 나눈 가족(패밀리) 같았습니다.

목사님은 도시 교회가 이 치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재 자체로 정화와 치유의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굳이 거창한 말을 건네지 않아도, 그 곁에 머물기만 해도 선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사랑의 기운이 흘러들어 마음이 씻겨 내려가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까?"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한 가족이 되는 공동체'여야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의 존재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목사님의 도전을 마음에 깊이 새겨봅니다.

자약과 장미 향기가 가득하다는 안골교회의 마당처럼, 분주한 일상의 닻을 내린 우리 은명교회 안에도, 그리고 숨겨진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마음들 위에도 그리스도의 깊은 위로와 치유의 향기가 가득 퍼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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